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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챕터 1

챕터 1-(4)

 

 

 

 

창고는 넓었다. 그렇기에 많은 인원의 협력이 필요했지만, 다행히 흉기를 통제하려는 목적 하에 대부분 뭉칠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 사이에 구체적인 방침이 없었다는 것이다.

 

혼란이 가중되려던 찰나에 세구로가 나서서 질서정연하게 우리를 지도했다. 우린 그의 지도에 따라 2인 1조 혹은 3인 1조로 찢어졌다. 누군가 몰래 흉기를 가져가지 않도록 서로를 감시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조를 나눈 우리는 창고의 흉기나 흉기가 될만한 것들을 분류한 다음 한 곳에 모아두는데 박차를 가했다.

 

비교적 친한 그가 지도자 역할을 자처했기에 카고시마의 사정을 털어놓는 것 또한 난이도가 낮았다. 그 대가로 의도치 않은 오해를 받았지만, 말 그대로 오해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맡은 쪽은 창고의 가장 구석진 곳이었다. 흉기를 모으고, 상자에 담고, 그 수와 종류를 명단에 작성하고…다시 정리하고…작성하고…틀린 부분이 있나 확인하고…그런 단순 노동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지루한 것과 별개로,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기지개를 피며 철제 선반과 상자로 둘러싸인 창고 내부를 쭉, 둘러보았다.

 

 

루마 코다이: 후…역시 너무 넓어, 여기.

 

 

이런 데서 살인이 일어나면 시체를 찾는데도 한세월이 걸리리라. 그런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걸로 된 걸까. 흉기를 통제하고, 당번을 세우는 정도로, 살인이 일어나지 않을까.

 

노력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에 한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만족은 좀처럼 오래가지 않고, 어떤 목표를 이뤘을 때의 성취감은 어느샌가 평범하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끝을 모르는 탐욕. 욕심. 그래, 욕심이다. 내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욕심 때문이다.

 

나는 머리를 좌우로 저어 뇌리에 맴도는 잡념들을 털어냈다. 지금은 흉기를 통제하는 일에 집중하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며 속도를 높이는데, 시야 앞에 칼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루마 코다이: 아, 땡ㅋ…….

 

 

날 도와주려는 줄 알고 감사를 표하며 칼을 집으려다 칼의 날 부분이 내 쪽으로 향해있다는 걸 깨달았다. 질 나쁜 농담이다. 그녀다운 농담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위를 올려다 보자, 잔망스럽게 웃고 있는 한 여자아이가 시야에 잡혔다. 기본적으로 2인 1조로 움직여야 했기에 내게도 파트너가 필요했다.

 

 

카야시 요아: 우후후, 아까비 아깝숑.

 

 

그리고 내 파트너는 익살맞은 성격이 특징인 나카야시였다.

 

 

루마 코다이: 위험하잖아. 이리 줘, 같이 보관할 테니까.

 

카야시 요아: 하지만 어림도 없지! 바로 도망가버리기!

 

루마 코다이: 어차피 나 아니어도 다른 얘들이 압수할걸…나중에 딴 소리 나오기 싫으면 그냥 지금 줘.

 

카야시 요아: 흥, 싫네요! 님 반응이 너무 노잼이라 주기 싫어짐!

 

 

그렇게 혀를 내밀더니 순순히 칼을 건넨다. 어차피 줄 거면서 왜 틱틱댄 걸까. 역시 그녀의 사고는 따라가기 벅차다.

 

 

카야시 요아: 저기저기, 화났어? 응? 별로 화나지 않았다구? 역시 다들 요아를 좋아하는 게 분명해~!

 

루마 코다이: 묘하게 텐션 높네. 안 피곤해? 이제 곧 밤시간인데.

 

카야시 요아: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잔다지만 나는 청개구리라 말이지! 착한 어린이라도 늦게 잘 수 있다는 걸 몸소 실천하는 중이야!

 

루마 코다이: 그건 그냥 불성실한 애라는 거 아닐까…하하, 나도 평소에 늦게 자는 편이니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카야시 요아: 정말 뭐라 할 처지가 아니네! 반성하도록 해! 산타클로스는 일찍 자는 아이에게만 선물을 가져다주는 법이니까! 후훗, 그렇다 해도 우루마는 동심에서 벗어난 지 오래니까 더 이상 기회가 없겠네! 절대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사실은 부모님이라는 허무한 게 아니니까 말이야!!

 

 

우스꽝스럽게 익살을 떨어댔지만 결국 요지는 일찍 자는 편이 좋다는 건가. 여기서 가장 신장이 작은 사람이 그렇게 말해도 설득력이 없다, 고 말하면 몇 대 맞아도 할 말 없겠지.

 

나카야시는 빈 철제 선반에 걸터앉더니 흥흥, 거리며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낸다. 그 한가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다. 단순 노동에 너무 지친 탓일까.

 

이내 그녀는 자신의 모노패드를 잠시 만지작거리다 문득 나를 향해 밝게 말문을 건넸다.

 

 

카야시 요아: 흐흥, 우루마, 그거 알아? 이 모노패드, 나름 최첨단이야! 메모랑 지문 인식도 되고, 채팅까지 되더라고!

 

루마 코다이: 채팅…? 그러고 보니 모노쿠마가 체육관에서 언급한 거 같기도 하고.

 

카야시 요아: 기둘려 봐바! 전원을 키고…채팅에 들어간 다음…메시지를 보내면…….

 

 

나카야시가 일일이 자신의 행적을 읊으며 모노패드를 조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모노패드가 신음을 토했다.

 

 

[나카야시 요아: 바보 ㅋㅋ]

 

 

카야시 요아: 이렇게 실시간으로 메시지가 간다는 말씀! 어때, 짱이지, 짱이지?

 

루마 코다이: 어…응, 대단한걸.

 

 

나는 떨떠름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실시간으로 메시지가 오가는 정도는 최첨단이라 부르기 민망했으니까. 그녀 말마따나 지문이나 메모 기능까지 탑재돼있는 건 놀라운 일이긴 했으니 딱히 태클을 걸진 않았다.

 

그렇지만, 메시지 내용이 조금 신경을 자극했다. 잠시 보낼 답장을 생각하던 나는 망설임 끝에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보냈다.

 

 

[우루마 코다이: ㅗ]

 

 

카야시 요아: 무슨 뜻이야, 이거! 죽고 싶어?!

 

루마 코다이: 아, 아니…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카야시 요아: 그게 아니지! 사랑스럽고 큐트한 요아님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가 맞는 거야!

 

 

나도 모르게 오랜 친구한테 반응하듯 채팅을 보내버렸다.

 

그만큼 그녀가 친숙하다는 뜻이었지만, 한편으로 겁이 난다. 어느샌가부터 그녀의 붙임성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있었으니까. 전혀 인식하지 못하겠다. 내가 어느 정도만큼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리고 있는지를.

 

정작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아니,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태연함에, 나는 이상할 정도의 불편함을 느꼈다.

 

 

카야시 요아: 우후후, 채팅도 모자라 메모장까지 있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늘 가지고 있던 수첩이 없어져서 메모할 데가 따로 없었거든!

 

루마 코다이: 그래…? 그거 다행이네. 별로 의미 있을 거 같진 않지만.

 

카야시 요아: 히히, 갑자기 뭐야? 다크한 우루마가 온몸을 지배하는 중이야?

 

루마 코다이: 그냥……누가 이미 흉기를 훔쳤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게 다 의미 있을까 해서. 제안한 장본인치곤 무책임할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살인을 막을 수 있을 거란 자신은 없거든.

 

카야시 요아: 흐흥~ 그렇구나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아~

 

 

나카야시의 의미심장한 말투를 듣고 나서야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내내 잘 버티다 느닷없이 솔직한 푸념을 내놓은 것이다. 억누르고 억누르던 감정의 둑이 마침내 허물어진 걸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녀에게 느낀 감정의 정체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열등감이었다. 정말 쪽팔리게도, 나는 그녀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나는 이렇게나 고통스러운데, 어째서 그녀는 태연한가. 나와 같은 고통에 시달리지 않는가. 어째서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고,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질 수 있는가. 그런 유치한 감정이 뇌리를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때묻지 않은 그녀의 순수함이 부러웠다. 밝은 성격이 부러웠다. 어린아이와도 같은 해맑음이 고결하게까지 느껴졌다. 남들은 가볍고 진중함을 모른다 평가할지 몰라도, 내겐 그녀가 너무나도 빛나 보였다.

 

순간, 머릿속에서 오가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산산이 흩어졌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 내 머리를 연신 가격했기 때문이다.

 

 

카야시 요아: 요놈, 요놈! 머릿속에 마구니가 꼈구나! 내가 친히 천벌을 내리겠다! 우루루, 쾅쾅!!

 

루마 코다이: 악! 악! 아파! 진짜 아프니까 감정 실어서 때리지 마!

 

카야시 요아: 그치만 우루마가 너무 한심해서 때리고 싶은걸! 누가 우루마 보고 사람 죽는 거 막아달라고 했어?

 

루마 코다이: 그건…아니지?

 

카야시 요아: 그래! 아니라구! 우루마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말하지 않고서 전해지는 마음은 없어! 혼자 말 못하는 이유로 괴로워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아?

 

 

나카야시가 내게 삿대질하며 엄한 눈초리로 내려다본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정곡을 찔린 듯 날카로운 고통이 가슴에 아려온다.

 

 

카야시 요아: 뭐, 다행스럽게도 여기엔 우루마가 바보 같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거든! 그러니까 너무 쓸쓸해 말라구! 우루마는 혼자가 아니잖아? 그치?

 

 

그녀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해맑은 표정. 초승달을 그린 채 위로 휘어져 있는 입꼬리. 과장스러운 몸짓. 헛웃음이 나온다. 악의라곤 일말도 비치지 않는 저 미소가 가증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듣고서, 아직 내가 체념에 얽매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고독했고, 또 괴로웠다. 그는 필시 내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리라.

 

결과가 버젓이 나왔음에도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 내 태도는 분명 알량했다. 그러나 아직은 굽힐 수 없었다. 그녀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았기에.

 

 

루마 코다이: 그건 내가 좋은 사람일 때의 얘기야. 만약 내 과실로 사람이 죽거나하면 지금 같이 날 봐주는 사람은 없을걸.

 

카야시 요아: 후흥, 물론 우루마의 영역 안에서 살인이 벌어진다면 우루마를 질책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카야시 요아: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 가령, 나는 우루마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루마 코다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카야시 요아: 그럼! 우루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착하고, 화도 안 내고, 내 장난도 잘 받아주잖아? 우후후, 다른 얘들은 재미없는 성격이라 할지 몰라도 나한텐 딱 좋은걸.

 

루마 코다이: 그런 거야?

 

카야시 요아: 그런 거지!

 

 

나카야시는 의기양양하게 허리 춤에 손을 올리더니 엣헴, 하고 콧대를 세웠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고 있자니 안에서 형용할 수 없는 거부감이 꿈틀거렸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변할 변심에 불과하다. 나는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토이다가 살인자임을 밝혔을 때, 그를 쏘아보던 싸늘한 시선을. 나는 그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모든 걸 내려놓지 못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어째서 그녀의 장난스러운 한마디에 진심 어린 위안을 얻는 걸까. 그녀 입장에선 시답잖은 위로에 불과할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인가, 혹은 의도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드러내는 사람인가. 한가지 깨달은 점은 있었다. 나는 그 깨달음을 입에 담았다. 완전한 항복 선언이었다.

 

 

루마 코다이: 나카야시, 너도 그래.

 

카야시 요아: 웅? 뭐가?

 

루마 코다이: 좋은 사람이라는 거. 그 정의가 뭔지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넌 분명 거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해.

 

 

나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무엇이 좋은 사람인지를 정할 순 없었다. 개인마다 다를 테니까. 그러나 누가 좋은 사람인지는 기준을 내릴 수 있었다. 그것 역시 개인마다 다를 테니까.

 

그녀는 내게 좋은 사람이었다.

 

 

카야시 요아: 우후훗, 우루마한테는 당연한 소리를 멋들어지게 하는 재능도 있나 보네! 나한텐 그런 재능은 없어서 말이지, 솔직하게 말하는 법밖에 모르거든. 그러니까…….

 

카야시 요아: 고마워! 날 그렇게 생각해줘서!

 

 

나카야시는 환하게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녀의 눈을 마주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만족스러운 눈치로 선반에서 내려왔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콧노래를 이어부르며 상자 쪽으로 다가간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진정되지 않는 감정을 억눌렀다. 어째선지 가슴이 뛰었다. 그녀의 잔망스러운 미소가 뇌리에서 떨어지지 않았기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묘한 기류가 주위를 휘감고, 우리는 차근차근 흉기를 정리해 갔다.

 

 

 

단간론파 미러
챕터 1
-회색빛 정적에 둘러싸인 진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인근 모든 흉기를 상자에 담을 수 있었다. 명단에 틀린 부분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하던 나는 몸을 일으켰다.

 

 

루마 코다이: 후우, 이 정도면 됐겠지. 생각보다 오래걸렸네.

 

 

손을 탁탁, 털며 흉기가 든 상자를 들어 올리려는데 순간적으로 나카야시가 끼어들었다.

 

 

카야시 요아: 우후후, 이거이거 내가 나설 차롄가.

 

루마 코다이: 어? 보기보다 꽤 무거울 텐데?

 

카야시 요아: 괜찮아, 괜찮아! 나 이래 보여도 꽤 힘 쎄거든! 여고생의 힘은 세계 최강이라는 말도 있잖아? 난 귀엽기까지 하니까 우주 최강인 셈이지!

 

 

말도 안 되는 계산법을 펼친 나카야시는 으챠, 하고 상자를 들어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카야시 요아: 끄, 끄응…! 어…어때…이래 보여도…꽤 힘 쎄지…? 작다고…무시하면…큰 코 다쳐…!

 

루마 코다이: …그냥 내가 들게. 이리 줘.

 

카야시 요아: 후읏…그…럴래? 어, 어쩔 수 없지…네…체면도 있으니…여기선 …양보하는 수밖에.

 

 

나는 그녀에게서 상자를 전해받았다. 묵직했다. 그녀가 상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이유가 짐작될 정도로.

 

그녀 역시 스스로가 근력엔 일가견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먼저 상자를 들겠다고 나선 거지? 내가 힘들어 보여서 도와주려 한 건가?

 

 

카야시 요아: 허억허억, 다시는 작은 것들을 무시하지 마라.

 

 

…아니면 그냥 자기가 상자를 옮기고 싶은 충동이 1순위로 들었던 걸지도. 왠지 모르게라는 표현만큼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창고의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곳엔 겹겹이 쌓인 상자들과 함께 세구로가 서 있었다. 그는 안경을 올리며 일일이 명단에 적힌 사항과 상자의 흉기를 대조하는 듯 보였다. 어딘가 못 미더운 모습을 보였던 지난 날들과 달리 이런 부분에선 철저한 모습을 보이는 남자였다.

 

문득 그가 나를 발견하곤 미간을 찌푸린다.

 

 

구로 이쿠히로: 넌 왜 볼 때마다 여자애랑 같이 있는 거 같냐. 열받게.

 

루마 코다이: 기, 기분 탓이야. 원래 2인 1조가 기본이잖아.

 

 

나는 세구로 앞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루마 코다이: 여기, 이걸로 우리 쪽도 마지막 상자야.

 

구로 이쿠히로: 후, 이걸로 위험한 것들은 거의 다 치운 건가? 뭐…포환이나 옷걸이 같은 것들까지 치웠다간 하루만으로 부족할 테지만.

 

카야시 요아: 맞아맞아, 잔업 수당도 없으면서 이 이상은 무리라구! 그보다 그 라인업은 뭐야? 너무 빡빡하잖아! 아무도 그 정도까진 바라지 않는다구!

 

구로 이쿠히로: 아니, 실제로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어. 세미츠랑 츠기타가 그렇게 주장했거든. 이왕 흉기를 통제하는 거 완전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너흰 구석에 있어서 몰랐겠지만, 방금 대다수가 너무 과하다 해서 무산된 참이야.

 

카야시 요아: 엑, 진짜? 독하다 독해! 근데 다른 건 몰라도 포환은 치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이겠지…?

 

구로 이쿠히로: 굳이? 나도 양손으로 오래 못 들 정돈데 포환이 어떻게 흉기로 사용되겠어.

 

루마 코다이: 어쨌든 우리가 마지막인 것 같네. 너 말고 다른 얘들이 전혀 안 보이는 거 보면.

 

구로 이쿠히로: 그래, 이만 퇴근해라. 나도 마지막으로 명단에 틀린 거 있는지 확인해 보고 불침번 설 테니까.

 

카야시 요아: 만세! 드디어 해방이다! 그럼 나중에 봐 둘 다! 특히 우루마, 오늘 에스코트 고마웠어!

 

 

나카야시는 환희의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손바닥에 입맞춤하더니, 내 쪽으로 가볍게 날렸다.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과분한 감사인사를 받아버렸다.

 

그렇게 그녀는 멀어져 갔다. 멋쩍은 여운과, 멋쩍은 감정을 남기고.

 

 

구로 이쿠히로: …이래도 기분 탓이냐?

 

 

아니, 오해의 소지도 남겼군.

 

 

루마 코다이: 어, 기분 탓이야. 나중에 누구처럼 후회할 거 훤하니까 이상한 말 하지 마라.

 

구로 이쿠히로: 미친 기만자 새끼…돈 있으면 뭐해, 여친이 없는데…….

 

 

나는 둘 다 없는 처진데 누가 누굴 보고 기만자라는 걸까. 어쨌거나 끝이 보이지 않던 창고 정리에도 끝이 찾아왔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 내겐 이 뿌듯함을 만끽할 자격이 충분했다.

 

창고를 나오자 비교적 신선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같은 내부임에도 받아들이는 공기의 질이 다르다. 모노쿠마의 의도일까, 단순한 기우일까.

 

생각에 잠긴 채 개인실로 발을 딛으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노리 루루나: 어이, 지금 어딜 가는 거지?

 

루마 코다이: 까, 깜짝아! 쿠노리였구나…진짜 똑같아서 깜짝 놀랐네. 그러고 보니 너희 셋이 당번 서기로 한 거였지?

 

코모리 카나미: 이봐, 신입! 리액션이 약하다! 나때는 상사가 농담 한번 던지면 바닥에서 배꼽잡고 데굴데굴 굴렀는데! 하여간 요즘 것들 참 편하다 편해!

 

루마 코다이: 무슨 컨셉이야…? 본인 목소린데 쿠노리가 옆에 있으니까 흉내 낸 목소리 같아서 헷갈리네.

 

노리 루루나: 에헤헤, 코다이 군 목소리도 낼 수 있다? 조금 목소리를 낮춰서...배에 힘을 준 다음…큼큼, 아아.

 

노리 루루나: 내 이름은 우루마 코다이. 현재 요코모리 카나미를 짝사랑 중이다.

 

코모리 카나미: 헉! 신입 군, 내게 그런 마음을 품을 줄은…미안하지만 사내연애는 금지야…앗, 하지만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밥 한끼 정도는…….

 

루마 코다이: 오…진짜 신기하긴 한데…이상한 상황극하지 말아줄래? 너네 묘하게 케미 좋아서 감당하기 힘들거든.

 

코모리 카나미: 응? 원래 여자애들은 금방금방 친해져. 이성한테 인기 많아지고 싶으면 이 정도는 익숙해지라구.

 

노리 루루나: 그러는 코다이 군도 하루카 쨩이랑 친한 느낌이지~ 은근 둘이 붙어 있을 때가 많고.

 

코모리 카나미: 흠, 확실히 둘이 뭔가 있긴 한가 보네요? 저희 제작진이 직접 취재해 본 결과 미묘한 흐름의 두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 요코모리 기자였습니다.

 

루마 코다이: 너희 나 놀리는 거에 맛 들렸구나…? 이따 세구로 놀리는 걸로 참아주면 안 될까? 타격감은 걔가 제일 찰질 거 같은데.

 

노리 루루나: 그건 그렇네~! 우루마 군이 불쌍하니까 이쯤에서 그만둘게, 헤헤!

 

코모리 카나미: 뭐, 개인적으로 카고시마 걘 좀 무섭더라.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워낙 무뚝뚝해서 그런가…난 감정 표현 없는 얘들한텐 영 정이 안 가더라고.

 

루마 코다이: 아깐 여자애들은 금방 친해진다며?

 

코모리 카나미: 응…? 내가…뭐라고…했더라…? 홀이라고…했나?

 

 

요코모리가 할아버지 같은 목소리를 내며 시치미를 뗐다. 이 둘과 아까 세구로까지 더해 불침번을 서는 건가. 잠깐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어쩐지 세구로에게 동정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허공에서 희미한 잡음이 들렸다. 잡음은 점차 몸집을 불려가더니 곧 뚜렷한 형태로 귓가를 강타했다.

 

 

[오후 10시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밤 시간입니다! 곧 일부 장소들이 잠길 예정이니 주의하시길! 그럼 모두 좋은 꿈 꾸세요!]

 

 

얄미우면서도 가증스러운 목소리. 본능적인 거부감에, 머릿속에서 목소리를 떨쳐내려 몸부림쳤다.

 

 

코모리 카나미: 아니, 뭔 수련회냐고. 밤마다 저딴 방송 틀어주는 거 아니겠지? 욱, 벌써부터 혈압이…….

 

루마 코다이: 모노쿠마 같은 건 신경 쓸수록 손해니까 무시하고…너희들, 모노패드에 채팅 기능 있는 거 알아? 난 나카야시가 알려줘서 방금 알아둔 참이거든.

 

노리 루루나: 채팅 기능? 여기서도 라인이 되는 거야~?

 

루마 코다이: 가능성은 낮지만 소토가키라던가…토이다가 창고를 습격해올 가능성도 있잖아? 소리치는 것 외에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상탤 전할 수단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코모리 카나미: 오, 꿀 정보 감사연. 바로 테스트 해봐야지.

 

 

요코모리는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 상기된 얼굴로 모노패드를 꺼냈다. 얼마 안 가 내 모노패드가 진동을 울렸다.

 

 

[요코모리 카나미: 바보 ㅎㅇ]

 

 

코모리 카나미: 어때어때, 갔어? 엌ㅋㅋㅋㅋㅋㅋㅋ 성능 확실하구만.

 

루마 코다이: …나, 그런 이미지였어?

 

코모리 카나미: 응? 무슨 이미지?

 

루마 코다이: 아냐, 아무것도. 어쨌든 불침번 수고해. 내일 보자.

 

코모리 카나미: 그랴. 너도 언제나처럼 미친놈 주의하고.

 

노리 루루나: 잘 자 코다이 군~! 내일 보자~!

 

 

순진한 얼굴로 손을 흔드는 쿠노리의 작별인사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카야시의 말이 뇌리에 떠오른다. 내가 바보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는 말. 어쩌면 그건 단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말이 아니었을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써서 좋을 건 없지만 신경 쓰지 않기엔 그 문턱이 너무나 높았다.

 

딱히 나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냥 그 사실이 조금씩. 아주 서서히, 피부에 스며들 뿐이었다.

 

 

나미 미호리: 우루마 군, 지금 자러가는 거야?

 

 

순간, 개인실로 걸음을 옮기던 내 시야에 하나미가 들어왔다. 무난하게 대답하려다 문득 하나미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이 시야에 밟혔다.

 

 

루마 코다이: 응, 그럴려던 참인데…손에 그건 뭐야? 상자?

 

나미 미호리: 식당에도 식칼 같은 위험한 물건들이 있잖아? 조리할 때가 아니면 창고에 같이 보관해서 관리하는 게 효율적이라 판단했거든. 세구로 군이 혼자 움직이는 건 위험하대서 무쿠다 군이랑 같이 옮기는 중이야.

 

쿠다 토시타로: 그러니까 왜 이런 짓까지 나서서 하는 거냐고. 존나 이해가 안 되네.

 

루마 코다이: 하하…그렇게 말하면서 도와주니 설득력이 없는데.

 

쿠다 토시타로: 뒤질래?

 

나미 미호리: 말 좀 예쁘게 해, 무쿠다 군. 어쨌든 나도 이것만 세구로 군한테 전달하고 잠자리에 들 생각이야. 딱히 여기에 눌러 앉고 싶은 건 아니지만, 살인이 일어나면 지금까지 해온 우리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니까.

 

 

물거품. 그 한마디에 심장이 덜컥, 하고 내려앉는다. 초고교급이나 되는 이들이 잠시나마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이유. 그는 가고자 하는 방향은 다를지 언정, 목적은 같았기 때문이다.

 

살인게임의 단절.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 것. 흉기를 통제하는 목적은 결국 살인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균열이 생기면 우리의 유대에 금이 가는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옅어진다. 모두 살인이라는 선택지를 쉽게 떠올린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여기 있는 대부분이 죽는다. 모노쿠마에 의해서가 아닌, 우리들 간의 자멸에 의해서. 그런 의미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모노쿠마도 긴장감 없이 평화롭게 이어지는 살인게임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 만약 이를 역이용할 수만 있다면…….

 

나는 하나미를 향해 애써 태연히 대꾸해주었다. 역시 아직 저울질을 끝내기엔 이르다.

 

 

루마 코다이: 그래, 고생해. 창고 정리하는 것만으로 정신없었을 텐데, 식당에 있는 흉기까지 생각하다니. 하나미는 새삼 대단한 것 같아.

 

쿠다 토시타로: 햐, 옆에서 거들어 주는 누군 안 보이나 봐? 하긴 파트너 잘 만나서 개꿀 빠는 애 눈에 뭐가 보이겠나.

 

나미 미호리: 알았으니 생색 좀 그만 내고 따라와. 남들보다 더 고생하게 된 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쿠다 토시타로: 네가 내 엄마라도 되냐? 혼잣말이니까 신경 끄셔.

 

나미 미호리: 유치해.

 

쿠다 토시타로: 뭐? 방금 뭐라고 했냐, 너?

 

나미 미호리: 혼잣말이니까 신경 끄지 그래?

 

 

하나미와 무쿠다는 알 수 없는 신경전을 벌이며 창고 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식당에 있는 흉기마저 모두의 관리하에 들어갔다.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정반대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만약 내가 살인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살인을 할 수 있을까?

 

서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마치 어두운 밀실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처럼.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낯선 고독함이었다.

 

 

 

 

 

나는 개인실에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궜다. 드디어 혼자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온다.

 

 

루마 코다이: 후…다들 열심이네. 저 기세라면 진짜 살인이 안 일어날 수도 있겠는걸.

 

모노쿠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살인은 반드시 일어나게 돼 있다구! 이 슈퍼캡틴울트라짱 모노쿠마님이 있으니까!

 

루마 코다이: 우, 우왁! 모노쿠마?

 

모노쿠마: 네~ 모두의 아이돌 모노쿠마 쨩이예요! 우뿌뿌, 안색이 좋아 보이네! 잘 지냈어?

 

 

착각도 잠시. 혼자만의 공간에 불청객이 끼어들었다는 불쾌감이 뇌리를 지배했다. 세구로가 끼어들었을 때는 부담이 들었을 언정 불쾌하진 않았는데, 모노쿠마의 얼굴을 보니 자연스레 분노가 끓어오른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루마 코다이: 하…진짜…가뜩이나 피곤한데 사람 놀라게 하고…덕분에 잠이 싹 날아갔네. 무슨 일 때문에 온 거야?

 

모노쿠마: 웅? 무슨 일 때문에 왔냐고?

 

모노쿠마: 진심으로 몰라서 물은 건 아니겠지, 내통자 군?

 

루마 코다이: …….

 

 

나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진심으로 모른다는 의미였다.

 

 

모노쿠마: 우푸푸, 너무 겁먹지 마! 곰은 사람을 찢는다지만, 난 초식 곰이거든! 인간 같이 더럽고 맛없는 고기는 안 먹어!

 

루마 코다이: 그래서, 정확한 용건이 뭔데? 잡담 들어주기?

 

모노쿠마: 일단은, 내통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맡기러 왔는데 말이야……우루마 군 하는 걸 보니 조금 괘씸해지더라고.

 

 

모노쿠마는 한걸음, 거리를 좁혔다. 그 움직임이 명백히 불쾌했기에, 나는 녀석이 좁힌 거리만큼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모노쿠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로 다가왔다. 이내 모노쿠마의 가증스러운 입이 떨어졌다.

 

 

모노쿠마: 내가 네 수작을 모를 줄 알았어? 내가 말한 대로 넌 분명 버림패일 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주인의 발을 물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거든.

 

루마 코다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모노쿠마: 넌 다른 얘들과 달라. 넌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 걸 바라고 있는 게 아니야. 그 '분위기'를 바라고 있는 거지.

 

모노쿠마: 모두가 살인을 경계하면 살인이 일어날 확률은 확실히 낮아져. 그럼 내가 조급해질 거고, 내통자인 네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나는 살인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으니까…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네 영향력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녀석들을 설득한 거겠지.

 

모노쿠마: 어때? 말로만 들어도 네가 너무 괘씸하지 않니?

 

 

나는 흔들리는 동요를 감출 수 없었다. 모노쿠마가 너무도 쉽게 내 속내를 간파해냈기 때문이다.

 

교착 상태를 살인으로 끊는 것. 모노쿠마가 내게 지시한 것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아니, 핵심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유대를 부추기면 부추길수록,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더 늘어날 거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착각에 불과하다면? 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건가?

 

역시 모노쿠마는 무서운 인물이다. 행동의 의중을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예측한다하더라도 금세 다른 수로 도망가버린다.

 

하지만…녀석에게도 약점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끝도 없이 오만하다는 것. 자신이 확신한 바가 있다면, 그를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내겐 분명 모노쿠마가 내통자에게 더 의존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루마 코다이: 하하, 난 그냥 평범하게 양쪽에 발을 걸쳐놓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날 언제 버릴지 모르는데, 네게만 의존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

 

루마 코다이: 너랑 손잡았다 해서 사람 죽는 걸 보는 게 좋을 줄 알아? 난 그렇게 계산적이지 않아. 그냥 순수한 의미에서, 여기서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도덕심 때문이기도 했다고.

 

모노쿠마: 네가 여기서 나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대답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노쿠마: 우푸푸, 뭐, 좋아! 한 번쯤은 넘어 가줄게! 딱히 그렇게 큰 위협도 아니었으니까! 그럼 내통자 군, 화해의 의미로 선물 받으라구!

 

 

나는 모노쿠마로부터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손바닥에 전부 들어갈 만큼 작은 사이즈의 렌즈였다.

 

 

루마 코다이: …이게 뭐야. 렌즈?

 

모노쿠마: 소개할게! 이른바 모노렌즈야! 내통자한테만 주어지는 특권이지! 지금부터 네게 두 번째 임무를 줄게!

 

모노쿠마: 모노렌즈는 착용자의 시야와 완전히 똑같은 시각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 쉽게 말하면 네가 보는 모든 게 녹화된다는 거지. 그 정보가 내게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거고.

 

모노쿠마: 그 렌즈로 누군가 나 몰래 수상한 짓을 꾸미진 않는지, 비밀을 숨기고 있진 않은지 감시하는 게 네 두 번째 임무야. 덤으로 네가 이상한 마음을 먹는 것도 감시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지!

 

 

모노쿠마의 설명을 듣고 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마 코다이: 말도 안 돼. 렌즈를 착용하는 것만으로 실시간 녹화가 가능하다고? 적어도 내 기억에 이런 기술이 상용화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모노쿠마: 네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증거지! 그보다 너는 아직도 네 기억을 믿어?

 

 

모노쿠마는 실망스럽다는 듯이 나를 뚫어지라 응시했다. 대놓고 핀잔을 먹이는구만. 별로 알려준 것도 없는 주제에.

 

그나저나 이 모노렌즈는 최첨단의 범주를 넘어섰다.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CCTV가 아닌가. 모노패드는 그다지 놀랄만한 기술력이 아니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게 보급화돼있던 기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노렌즈는 어떤가. 상용화는커녕 뉴스에서 접할 기회조차 있었던가? 한 가지 불길한 가능성이 뇌리를 스쳤다. 만약 바깥 세상이 내가 기억하던 시간을 이미 훌쩍 거쳐간 뒤라면?

 

나는 즉시 그 가능성을 뇌리에서 버렸다. 영상에서 본 엄마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의 시간이 내 기억보다 훨씬 앞질러 있다면, 엄마가 이미 죽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그 가능성을 전력으로 부정했다.

 

 

모노쿠마: 어쨌거나 내일부턴 이 렌즈를 차고 행동하도록 해! 만약 렌즈를 일부러 착용하지 않고 활동한다면 따끔한 벌을 줄 테니까!

 

루마 코다이: 있지, 다른 내통자도 이 렌즈를 차고 있어?

 

모노쿠마: 웅?

 

루마 코다이: 내통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표현이 조금 신경 쓰여서 말이야. 그건 나뿐만 아닌 누구라도 내통자일 수 있다는 말이잖아? 근데 첫 번째 날 밤 시간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찾아왔다는 건…나 외에 내통자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생들 간의 협력이 단단해질수록 이상할 정도로 교칙에 집착하는 모노쿠마는 내통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 이는 모노쿠마 역시 간파한 바였다. 그러나 내 의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였다.

 

나는 모노쿠마가 나를 버림패에 비유할 때부터 줄곧 생각해왔다. 나 외에 다른 내통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 분위기가 지속되면, 살인 게임의 교착 상태를 끊기 위해 살인에 나설 이가 필요할 테니까. 그게 모노쿠마가 말한 버림패의 역할일 것이다.

 

그런데 모노쿠마는 곧바로 나를 찾아왔고, 모노렌즈라는 괴상한 물건을 건넸다. 이로 인해 추리할 수 있는 점이 있었다. 버림패는 나 혼자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이가 있다면, 모노렌즈 같은 물건을 알려주지 않았을 테니까. 굳이 버림패끼리 서로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수단을 쥐어 줄 필요가 전혀 없다.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만약 모노쿠마가 나 외에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단순 내통자에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노쿠마가 진짜 의지하고 계획의 전모를 알고 있는…말 그대로 모노쿠마와 같이 계획을 주도한 주모자, 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녀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그 녀석만 잡는다면, 이 장난 같지도 않은 살인 게임에 어울려 줄 이유가 말끔히 사라질 테니까. 상대가 상대인만큼 간단하게 풀리진 않겠지만……내 가설이 전부 들어맞는다는 보장도 없지만……어쩐지 숨통이 한차례 트이는 느낌이었다.

 

 

모노쿠마: 우푸푸, 글쎄? 딱히 대답해줘도 상관은 없지만…이 이야기는 조금 미루도록 할까. 의심이 시작됐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기지 않을 테니.

 

루마 코다이: 아니지. 네가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믿을 가능성이 1이라도 생기는 거지.

 

모노쿠마: 거 참 내 말이 맞다니까 그러네! 흥이다, 흥! 의심 많은 우루마 군한테 삐졌다, 뭐!

 

루마 코다이: 아니, 잠깐만! 아직 얘기 안 끝났……!

 

 

미처 붙잡을 틈도 없이 순식간에 모노쿠마의 신형이 바닥 밑으로 꺼져 갔다. 하여간 영악한 자식. 주제를 돌리거나 회피하는 데는 도가 텄다.

 

나는 속으로 욕짓거리를 지껄이며 책상 서랍에 렌즈를 넣었다. 그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우웅!

 

 

모노패드가 움찔, 하며 진동을 울려댔다. 의문이 들었다. 이 진동은 누군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을 때 울리는 진동일 터.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내게 메시지를 보낼만한 이유가 있을까?

 

나는 의문과 의심 속에서 모노패드의 전원을 켰다.

 

 

[세구로 이쿠히로: 살려줘.]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오한이 들었다. 뭐지? 살려달라고? 누가 창고에 침입하기라도 한 건가? 설마 소토가키가?

 

개인실 방음 시스템이 얼마나 뛰어난진 모르겠지만, 밖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여차하면 밖으로 뛰어나갈 각오로 세구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루마 코다이: 뭐야, 무슨 일인데?]

 

[세구로 이쿠히로: 얘네들 틈만 나면 개소리 해. 실시간으로 정신테러 당하는 중.]

 

 

아, 뭔가 했더니 불침번 얘기였나. 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세구로 이쿠히로: 내가 무슨 스트레스 해소용 도구도 아니고 이젠 때리ㄱㅈㅂㅈ브븝ㆍㄴ]

 

[세구로 이쿠히로: ㅎㅇ. 방금 대화들은 전산 오류니까 무시해.]

 

[우루마 코다이: 요코모리구나. 심심한 건 알겠는데 세구로 적당히 놀려줘.]

 

[세구로 이쿠히로: 악어의 눈물 뭐임? 네가 놀릴거면 너 말고 얘 놀리라 했잖아.]

 

[세구로 이쿠히로: ? 이게 무슨 소리야.]

 

[세구로 이쿠히로: 야, 우루마. 해명해. 야.]

 

[세구로 이쿠히로: 야. 해명하라고.]

 

[세구로 이쿠히로: 아니, 어디갔어 얘.]

 

 

나는 그대로 모노패드의 전원을 껐다. 느닷없이 살려달라는 말을 듣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하필 모노쿠마가 다녀간 직후라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으리라.

 

모노렌즈…앞으로 그런 걸 착용하고 활동해야 하는 건가. 고의로 뺀다거나 하면 모노쿠마에게 제지 당할 게 뻔하고, 그렇다고 착용한 채로 활동하자니 제약이 많았다. 내가 언제 무엇을 하는지 전부 감시에 들어간다면, 앞으로 모노쿠마의 빈틈을 파고들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대로 잠자리에 들었으면 굉장히 심란했을 텐데 세구로가 재밌는 연락을 해와서 다행이다. 나는 불을 끈 뒤 이런저런 지도를 머릿속으로 그리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어쩐지 오늘은 기분 좋은 꿈을 꿀 것 같았다.

 

 

 

 

 

 

 

바람도 불지 않는다. 풀벌레의 날갯소리마저 들려오지 않는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외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익숙한 고독함이었다.

 

 

토가키 소야: …….

 

 

소토가키는 누군가의 전용실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의 무감정한 눈에선 살아있는 자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멀쩡히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낯선 이질감에 뒷걸음치는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짧게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친 끝에 도달한 곳은 또 다른 지옥이었다. 비록 그때는 자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안주하고 있는 곳이 왜 지옥인지를. 깨닫는 데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물 안 개구리는 행복할 수 있다. 우물 밖의 세상을 모른다면. 자신을 가두고 있는 철창 안 세상이 얼마나 비좁은지를 모른다면. 그렇다면 자신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지 않은 문제였다. 그렇기에 자신은 행복을 버렸다. 미련하게도.

 

그는 눈을 감고 과거의 잔상에 젖어 들어갔다. 그때와 달리 딱 하나, 후회하지 않는 점이 있었다. 바로 스스로가 선택해 손에 넣은 결과물이라는 것. 얼마나 뜨겁더라도 놓치지 않고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손이 열기에 전부 녹아버리지 않는 한.

 

이윽고 잔상에서 돌아온 그가 전용실의 문고리를 향해 손을 내뻗던 순간.

 

 

쿠다 토시타로: 에헤이, 밤길에 발소리가 그리 커서 쓰나. 어디 나 같은 서민들이 무서워서 돌아다니겠냐고.

 

토가키 소야: …….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무쿠다가 그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낮에는 찾아볼 수 없던 서늘한 경계심이 무쿠다의 눈빛에 서려 있었다.

 

잇따라 떠오르는 기억들이 뇌리를 헤집어놓는다.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진 않은 나날이었다.

 

 

“어이, 미친놈. 설명해 봐. 이거, 다 네 작품이냐?”

 

“일과 관련되지 않은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뭐 이런 또라이 새끼가 다 있어? 이딴 미친 새끼랑 같이 일하라고?”

 

 

그때와 같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 달갑지 않은 분위기.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익숙한 취급이었다.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깨달았으니까.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오던 세월을 떠올리면 꽤 우스운 일이다.

 

 

쿠다 토시타로: 여기 무슨 볼일이 있는지 몰라도 꺼져. 장사 접었으니까.

 

토가키 소야: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무쿠다 토시타로.

 

쿠다 토시타로: 핫, 이 야밤에 징그럽게 남자 스토커 짓이나 하러 돌아다녔다고? 왜, 싸인이라도 해줘?

 

토가키 소야: 싸인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전 그저 당신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고요.

 

쿠다 토시타로: …무슨 의미야, 그거. 내가 밤 시간에 여깄을 걸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말툰데.

 

토가키 소야: 제가 분석한 당신이라면, 아무도 없는 시간대를 노려 당신의 전용실에 머무를 거라 판단했습니다.

 

쿠다 토시타로: 그게 존나 이상하다는 거야. 밤 시간에 전용실이 안 열리는 것쯤은 알 텐데, 날 찾으러 전용실에 왔다고?

 

토가키 소야: 하지만 실제로 당신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쿠다 토시타로: ……허, 참.

 

 

무쿠다는 눈쌀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이 녀석은 모두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기에 표본이 적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더군다나 두건으로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기에 표정을 읽을 수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불쾌했다. 자신의 폐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저 두 눈이.

 

 

쿠다 토시타로: 널 보면 존나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어. 경호원 양반이나 해커 아가씰 볼 때도 그랬지만…그 둘은 너에 비하면 선녀지. 왜 그렇게 느꼈나 했더니, 네 눈이 마음에 걸리더군.

 

쿠다 토시타로: 너, 감정이 없구나.

 

 

마지막 말에 무게를 싣자 소토가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보통이라면 움직였다고도 볼 수 없을 그 동작이, 정적인 그의 모습에 커다란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무쿠다는 그 사소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쿠다 토시타로: 큭큭, 가끔 만난 적 있거든. 너 같이 세상 다 산 눈깔하고 있는 놈들 말야.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니까, 징그러운 놈들.

 

쿠다 토시타로: 넌 해커 아가씨보단 경호원 양반 같은 과 같은데…역시 정이 안 가. 너처럼 감정이 결여된 싸이코 새끼들이랑은. 뭐,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다만.

 

토가키 소야: 전 당신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아직까지는요.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이었다. 처음부터 녀석에겐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만, 왠지 모를 실망감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예정에 없던 묘한 질문을 꺼내든 이유는 그에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쿠다 토시타로: 그나저나 아싸라인 그쯤 타고 슬슬 합류하지 그래? 여기 제정신 아닌 얘들이 좀 있어서 혼자 다니다 진짜 좆되는 수가 있다?

 

토가키 소야: 전 합류할 수 없습니다. 제겐 당신처럼 재능을 숨길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남들을 속일만한 화법도 없으니까요.

 

쿠다 토시타로: …어이, 말에 뼈가 있는데.

 

쿠다 토시타로: 해명은 자유니까 설명해 봐. 방금 뭐라고 지껄였지?

 

토가키 소야: 물론 저도 당신의 진짜 재능은 알지 못합니다. 단지 당신이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만을 파악했을 뿐입니다.

 

토가키 소야: 마찬가지로, 다른 분들에게 털어놓을 생각 역시 존재하지 않으니 안심하시길. 전 당신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무쿠다는 말없이 벽에 등을 기댔다. 차가운 감촉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지만 앞선 의문이 올라오는 전류를 덮었다.

 

어떻게 들킨 거지? 전용실을 보고 추론했나? 그럴 리가. 속임수는 완벽했을 텐데. 자신의 재능을 착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다른 이들 앞에서 간단한 트랩을 선보였지 않은가. 바깥에서조차 자신의 재능을 끊임없이 속였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자신한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이 고작, 대화 몇 번 나눠보지 않은 이에게 들통났단 말인가?

 

많은 가설이 오갔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런 거지 같은 곳에 갇힌 이상, 언젠가 밝혀질 사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쿠다 토시타로: …핫, 재밌네. 그래서, 협박이라도 하러 왔냐? 좀 봐줘라. 너 좆되는 꼴 보려고 얘들 틈에 끼어 있는 건데, 불쌍하지도 않냐?

 

토가키 소야: 조금 다릅니다. 말했을 텐데요. 전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라고요.

 

쿠다 토시타로: 그러니까, 남자 둘이서 야밤에 뭔 오붓한 이야기를…….

 

 

짤그락,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소토가키의 손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어느 틈에 꺼낸 걸까. 소토가키가 손에 장신구를 든 채 무쿠다를 향해 내밀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금색빛깔의 목걸이에 그쳤으나 그렇지 않았다.

 

목걸이의 중앙 부근에 타원형의 장식이 달려 있다. 장식에 새겨져 있는 특이한 문양. 그 문양을 확인한 무쿠다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진다. 어린아이조차 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쿠다 토시타로: ……너, 그거 어디서 났어.

 

토가키 소야: 당신의 전용실에서 발견했습니다. 이건 제게도 면식이 있는 물건이어서요.

 

쿠다 토시타로: 곱게 내놔. 뒤지기 싫으면.

 

토가키 소야: 제 질문에 먼저 답해주신다면 드릴 겁니다. 

 

쿠다 토시타로: 아, 이 개새끼야. 협박하러 온 거 맞잖아.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지, 사람 설레게 하고 있어.

 

토가키 소야: 부정해도 좋습니다. 솔직하게만 답해주세요. 솔직하게 답해주신다면, 답변의 내용에 상관없이 드리겠습니다.

 

 

드물게도 기계같던 녀석의 말에 공백이 생긴다. 놀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감정이 얼어붙은 나머지 최소한의 자비조차 굳어버린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긴장을 느낀단 말인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녀석이 질문을 꺼내게 둬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녀석의 입을 막을 수단이나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잠시 망설이는 동안 그의 입이 떨어질 찰나의 시간을 허락하고 말았고.

 

진위와 의중을 전혀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한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토가키 소야: …당신이, 이 게임의 흑막입니까?

 

 

 
 
 
 

분량 조절 실패로 조금 늦었습니다. 지금까진 사실상 빌드업이었기에 앞으론 지금보다 더 재밌는 전개가 펼쳐질 거라...조심스럽게 장담해봅니다.

 

어쨌거나 다음번엔 지금보다 빠른 업로드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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